외국에 거주하는 A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B로부터 받지 못한 물품대금이 제법 된다. 어느날 B는 기존에 하던 개인사업을 폐업하고 똑같은 사업을 하는 주식회사 X를 설립하였다. B가 갖고 있던 사업용 재산 대부분이 X회사로 헐값에 양도되었고, B와 그 가족들은 X회사의 주주가 되었다. B의 재산을 압류해서 물품대금을 회수하려 했던 A로서는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 경우 A는 B가 아닌 X회사에게 물품대금의 지급을 요구할 수 있는가?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한 얘기이다. 자주 하는 얘기로 “법인과 주주는 별개의 법인격이므로 책임도 별개”이다. 따라서 A가 B에게서 받을 돈이 있다 하여 B가 주주로 되어 있는 회사에게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언제나 책임이 없다고 한다면, 개인사업자는 서류상의 사업 형태 주식회사로 바꾸고 사업용 자산을 신설법인 앞으로 넘겨버리는 방법으로 손쉽게 채무를 면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결과는 정의와 형평에 반하고 법이 주식회사 제도를 인정하는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여 회사를 별개의 법인격으로 보지 않고 주주와 동일한 책임 주체로 볼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을 ‘법인격부인의 법리’라고 한다.
법인격부인의 법리는 회사의 책임을 주주에게 묻는 경우가 보통이다(예를 들어, 회사가 파산하는 경우 그 배후에 있는 주주에게 회사의 채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사례처럼 거꾸로 주주의 책임을 회사에게 묻는 것도 가능하다(이를 ’법인격부인법리의 역적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주주의 개인 채무를 회사에게 부담시키는 데에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배후자와 무관한 선의의 다른 주주나 회사 채권자들의 이해관계가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는 모든 회사가 아니라 주주가 1인인 회사나 가족회사인 경우에만 법인격부인론의 역적용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 우리 대법원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온 예가 있다. 문제된 사안은, 개인사업자인 채무자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에서 기존 사업을 주식회사 체제로 변경하고 사업용 자산 대부분을 신설회사 앞으로 헐값에 양도한 사안이었다. 대법원은 신설회사의 주주 구성이 채무자와 그 가족으로 되어 있는 점, 즉 가족회사인 점을 확인한 후 신설회사는 설립자인 주주와 별개의 법인격이라는 것을 이유로 채무 변제를 거부할 수는 없다고 판결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과 비슷한 해석을 한 것이다. 판결문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배후에 있는 개인과 회사의 주주들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등 개인이 새로 설립한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로서, 회사 설립과 관련된 개인의 자산 변동 내역, 특히 개인의 자산이 설립된 회사에 이전되었다면 그에 대하여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여부, 개인의 자산이 회사에 유용되었는지 여부와 그 정도 및 제3자에 대한 회사의 채무 부담 여부와 그 부담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 회사와 개인이 별개의 인격체임을 내세워 회사 설립 전 개인의 채무 부담행위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부인하는 것이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한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회사 설립 전에 개인이 부담한 채무의 이행을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2021. 4. 15. 선고 2019다293449 판결)
우리 법은 주식회사에게 주주와 구별되는 별개의 법인격을 부여하고 있지만, 법인격이 채무를 면탈하고 위법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까지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문제된 사안과 비슷한 경우라면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얻어 법인격부인을 검토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겠다.
© 2022 정원일 변호사. All rights reserved.
정원일 변호사는 미국, 캐나다, 일본 등을 방문하며 교포분들과 한국계 기업을 상대로 한국법과 관련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상기 내용 기타 한국법과 관련하여 질문이 있으시거나 현지 면담을 원하시는 분은 여기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